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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공간/별이된 스타들

[가수/배우] 박용하 이야기,그리고 사진들 (1977~2010)

by 스퀄(rangx2) 202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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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스타분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떤식으로든 고인에 대해서 비방하는 글은 유족들과 지인들에게 또한번의 상처를 남기는것이기에

차단,삭제 하겠습니다)

1977년 8월 12일 ~ 2010년 6월 30일 (향년32세)

출생

1977년 8월 12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사망

2010년 6월 30일 (새벽 5시) 향년 32세

국적

대한민국

본관

밀양 박씨

장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새나리로 79 분당 메모리얼 파크

신체

175cm, 63kg B형

가족

아버지 박승인

어머니 이영란

누나 박혜연

매형 김재현

조카

종교

불교

학력

서울 서강 초등학교

서울 성산중학교

광성고등학교

서일대학 연극영화과

중앙대학교 연극학 학사

데뷔

1994년 MBC 테마극장

2003년 정규1집 기별

별명

굥 , 요나, 레인맨

박용하

대한민국,일본에서 활동했던 한류스타로

배우이자, 가수, 카레이서

1994년 MBC 방송 테마극장을 통해 데뷔했으며

KBS 예능 출발드림팀에서 에이스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2003년 한류 히트 드라마인 올인의 OST 인 처음 그날처럼으로

가수로써도 일약 스타에 올랐다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 조연으로 출연하며 히트를 쳐서

일본에서 한류스타가 되었으며 일본에서도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한류4대천왕인 이병헌,송승헌,권상우의 4번째 자리에 박용하가 있었다

4년 연속 일본 골드디스크상 수상 (2005~2008년)

2007~2008 올해의 싱글상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등을 받았다

2008년 드라아 온에어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2009년 영화 작전에서 주연을 맡았다

2010년 6월9일 일본에서 생전 마지막 앨범인 STARS 가 발매되었다

밝은 성격이었던 박용하의 이면에 어떤 힘든점이 있었을까..

2010년 6월 30일 새벽 5시 30분

드라마 러브송 촬영을 앞둔 상태에서 강남 논현동의 자택에서

목을 매어 숨을 거둔것을 어머니가 발견했다.

유서는 발견 되지 않았다

오랜 우울증에 따른 자살로 방송에는 보도되었다

박용하는 20대때 부터 불면증이 심했고 수면제를 복용해왔으며

지난 2010년 4월 트위터에

수면제 복용 경력 14년차이지만 좋진 않더라 라는 글을 남기기도했다

사망 2,3일 전 지인들에게도

"일도 힘들고 이 생활도 너무 힘들다, 생각이 정리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좀 하자"

라고 토로하기도했다

다른지인은 인터뷰에서 "용하가 너무 힘들고 죽고싶다"라는 말을 자주해왔다

"오늘 새벽에 친하게 지내는 후배에게 전화해 죽고싶다 너무 힘들다"

고말했으며 그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자살전날, 위암투병이었던 아버지를 간호하며 "미안하다"

"아버지 대신 내가 대신 아파야했는데 미안해 미안해"

라는 말을 여러번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일본에서 워낙 유명한 연예인이었기때문에

월드컵 파라과이전 소식 보다 박용하 자살을 속보로 내보내기도했다

2010년 7월9일 일본에서는 인기그룹 SMP의 나카이 마사히로가

진행한 TBS 킨스마에서 1시간동안 박용하 추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했다

2010년 10월 22일 위암으로 투병중이셨던 그의 아버지도 떠났으며

아들과 같은 납골당에 안장되었다

매년 유족들과 한국과 일본의 팬들이 추도식을 열어주고있다

<박용하의 개인적 이야기>

1998년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소지섭을 만나 친해졌다

과거 SES 유진과 연인 사이였다

2002년 러빙유 드라마를 통해 주인공으로 연을 맺게 되었다

국제 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의 홍보대사였으며

아프리카 은자메나의 60km 떨어진 파샤 아테레 지역에 학교를 세우기도했다

100명의 팬들에게 직접 쪽지를 보낼만큼 마음이 넓었다고한다

친절하고 대인배적인 기질이 강해서 주위에 좋은 평판과 미담이 많았다고한다

평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언해주던 성격이었다 하는데

결국 자신의 속내를 많이 털어놓지는 못했다

주변에게 폐를 끼치는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우울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박효신,김원준,소지섭과 절친이었다

절친이었던 소지섭은 발인까지 곁을 지켰고

장례식 비용도 모두 정리해줬으며 이후 박용하의 부친이

돌아가셨을때도 빈소를 방문해 곁을 지켰다

그외 연예인 스타크래프트 대회 1등 정도로

스타 실력이 좋았으며 과격한 스포츠를 섭렵할 만큼 대인배

적인 면모가 있었다

바이크 동호회 회원이며 , 레이서 자격증도 보유했으며

경주에서 중상위 성적의 수준급 실력도 갖고 있었으며

게임/바이크/스노우보드 등을 소지섭이 박용하에게 배웠다고

한다.

실제 2004년 BAT GT 챔피언쉽 시리즈 투어링A에 출전 9위를 했다

<수상 경력>

1998년 MBC 연기대상 신인상 (보고또보고)

2002년 KBS 연기대상 우수연기상 (겨울연가)

2004년 서울가요대상 한류상

2005년 일본골드디스크 신인상

2006년 일본골드디스크 올해의 노래상

2007년 일본골드디스크 최고의 싱글상 ,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

2008년 일본 골드디스크 올해의 싱글상,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

2008년 M.net 핫글로벌 스타상

2008년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남자연기 드라마부문 스폐셜상 (온에어)

2008년 스카파어워드 한류상

2009년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상

2010년 스카파어워드 한류상

<박용하 사진들>

 

 

<박용하 움짤>

 

 

<박용하 장례식, 빈소>

<스퀄의 개인적인이야기>

올인으로.. 알게 되었던 배우

처음그날처럼은 지금 들어도 너무 좋은곡이고 너무 슬픈곡이라 생각 한다.

정말 밝은 사람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이자 가수였는데

우울증으로 뒤로는 매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생각 하니 너무 답답하다

사망전날, 동방신기 김재중 과 , 박시연과 통화를 했었다고한다

김재중한태는 "다음달에 한번 시간 낼께 소주 한잔하자" 하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엄청 대인배인 성격이었던 만큼

몸은 열정적으로 앞으로나아고자 했지만 , 정신이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던것같다

몸과 마음의 괴리가 컸겠지..

32살의 너무 꽃다운 나이에.. 떠나서 가슴이 아프다

항상 밝은 모습 웃는이 많았던 박용하 였는데..

얼마나 마음속으로는 큰 짐을 안고 살아갔을까 생각 된다

고통이 없는 그곳에서는

편안한 안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https://youtu.be/eQ3YRhDOugI

떠나간 스타분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떤식으로든 고인에 대해서 비방하는 글은 유족들과 지인들에게

또한번의 상처를 남기는것이기에 차단,삭제 하겠습니다)

(구하라 관련 금전및 가족 내용은 댓글에 달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스타의 빛났던 순간의

사진들이 하나둘씩 유실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것이 싫어

포스팅한 글입니다. 진실 공방은 이미 별이 된 고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스타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함께 추억해주시고

또 함께 구하라를 기억속에서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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