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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공간/잘생긴 남자 연예인

[한국] 잘생긴 한국 축구선수 안정환 (테리우스) 안정환의 모든것

by 스퀄(rangx2)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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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잘생긴 한국 축구선수 안정환 (테리우스) 안정환의 모든것

 

이름 : 안정환

安貞桓  Ahn Jung Hwan

 

1976년 1월 27일

경기도 파주군

 

국적 대한민국

 

178cm , 85kg , AB형

 

서울대림초등학교

남서울중학교

서울공업고등학교

아주대학교

 

프로입단 1998년 대우 로얄즈

 

양발선수

 

등번호 8번,9번,10번,11번 19번,26번,30번,36번

 

대우 로얄즈 (1998~2002)

AC 페루자 (2000~2002 임대)

시미즈 S펄스 (2002~2004)

요코하마 F.마리노스 (2004~2005)

FC 메스 (2005~2006)

MSV 뒤스부르크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부산 아이파크 (2008)

다렌 스더 (2009~2011)

 

국가대표

71경기 17골 (2001~2012년)

 

 

안정한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현재는 해설위원, 방송인 , 감독 예정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 미드필더

 

축구 선수시절 뛰어난 볼컨트롤 , 드리블 , 패스 , 반박자 빠른 정교한 슈팅 등

데뷔때 부터 활약했으며 판타지스타로 불리운 선수다

 

화려한 외모덕에 수많은 여성팬은 덤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서

한때까지 아시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0년 박지성이 월드컵에서 1골을 추가해서 공동 기록으로 보유

2018년 손흥민이 2골을 추가하며 공동 기록으로 보유 하고 있다

 

<안정환의 생애>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을때 처음 오렌지를 먹어봤다 할 정도로

불우한 어린 환경에서 자라야했다

 

어렸을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나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게 되어

외할머니곁에서 자랐다 (김승우 승승장구에서 말한 그의 유년시절은 눈물겨웠다)

 

외가집이 부유한편이었으나 안정환이 6살때 사업실패로 기울었고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운영하다가 실패한뒤 여러곳을 떠돌아다녀야했다고 한다

 

결국 외할머니를 따라 둘이서 판자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배가 너무 고파 무랑 배추를 훔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 먹고

옷이 없어 남의집 빨래를 훔쳐 입거나 산에 뿌려진 북한 대공 홍보물(삐라)를 주워 미군부대 신고해

학용품을 마련 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지 못해 걸어다니고

차를 놓쳐 못타는 날은 체육창고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했는데 할머니가 왜그러냐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한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대표팀 시절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차범근)이라는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한다

 

안정환의 할머니는 안정환이 축구하는것을 반대했었는데

잘 못먹는 아이라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 걱정했다고 하고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빵과 우유가 나와서

 

다른 아이들 보다 조금 달리기가 빨랐던 안정환은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서

축구를 시작 했다

 

이후, 나이가 들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 대표가 되고나서야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줄수 있었으나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느라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어려운 생활속에..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은적도 있다고 한다

 

아주대학교에 진학한 안정환은 졸업한후 거액에 프로축구단에 입단하는 선배들을 보고

2학년때 축구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 투입으로 2골 1어시스트로 1대2로 지던팀을 5:2로

역전승 시킨 일화가 유명하며 그때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한것이 프로 생활의 시작이다.

 

 

<안정환 리즈 시절 사진>

 

 

 

<안정환 움짤>

 

 

<안정환 선수 시절 움짤>

 

 

 

<안정환의 선수로써의 능력과 성격>

<자료 : 나무위키,네이버신문,TRICOLORTV 수원블루윙즈 팬블로그 참고 >

 

 

1999년 부산 대우와 계약조건에 명시 되어있었던

(계약조건 : 리그 MVP시 유럽진출을 돕겠다는 조항) 이 현대 산업개발로 넘어가며

라리가 진출이 막혔다. 하지만 이틀 정도 휴가를 냇을뿐 다시 훈련장에 복귀하여 참고

시즌을 더 뛰었다 한다

 

안정환은 데뷔후 3년간 87경기에서 46골 11도움을 했으며

경기당 0.5 골이상을 넣으며 골결정력이 좋은 선수로 K리그에서 히트를 쳤다

특히 그가 그동안 한국 선수와 달랐던것은 멀리서 날아들어오는 크로스만 잡기 급급했던

선수들과 달리 슈팅 동작을 위해 공을 잡아놓는 플레이로 수비수를 꿰뚫었다.

빠른 타이밍에 짧은 거리, 직선적인 슈팅을 강하고 빠르게 쏘는 스타일로 승부를 지었으며

유럽 선수의 느낌이 강한 매력이 있었다.

 

골 결정력이 좋아 프리키커로 자주 나왔으며

단거리장거리 가리지 않고 골을 잘 기록해줘서

여성팬들을 실력으로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국내에서 여러 활약 이후 전북 현대에서 20억의 거액의 배팅액으로 안정환을 영입하려했지만

당시 최고 리그인 세리에 A , 스페인 라리가의 진출을 하게 된다.

 

안정환은 입단후 첫 경기인 2부리그팀경기에서는 활약을 못했는데

몇주뒤 3부 리그 보르미에제와 친선경기에서 입단 2경기만에

4골 4도움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감독의 신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후 첫 공식전 리그컵 에서 활약을 하지 못했고

 

팀은 첫라운드 탈락을 하게 된다

이후에도 몇차례 출전 기회가 있었지만 득점 없이 부진했고

수비위주의 한가지 전술만 고집하는 감독과 성향이 맞물려서

비슷한 시기 입단한 브리자스 라는 공격수에 밀려 7경기 출전을 나오질 못했다

 

유벤투스 경기를 기점으로 인상적인 플레이를 했던 안정환은

볼로냐전에서 첫 도움을 기록하고 입단 9개월만에 아탈란타 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한다

다음 경기인 바리전에서도 골을 넣으며 2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으며

우디네세 전에서는 2골을 터트리며 2000-2001 시즌 정규 리그 15경기에 출장

교체 11 하여 4골 1도움을 하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 스포츠 전문 방송에서는 안정환의 무회전슛 , 왼발슛 , 피지컬

스피드,헤딩력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당시 임대로 세리에 A를 갔던 안정환은 구단으로 13억에 정식 이적 제의를 받는데

당시 안정환을 데리고 있던 부산 구단 미온적인 반응과 협상 방식의 차이로

이적에 실패했고 6개월 재임대후 완전이적이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의 재계약을 하게 된다.

 

나름대로 이후에도 두번째 시즌동안에 어느정도 준수한 실력을 펼쳤지만

계약문제등으로 팀 훈련의 수행에 문제가 있는 상태로 리그에 나가다 보니

눈에 띄는 활약이 없는 상태로 전반기를 마친뒤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 2002 월드컵의 전지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은 월드컵 신화를 썼지만

 

안정환의 소속팀 페루지아는 조국인 이탈리아를 안정환이 탈락시켰다라는 이유로

6개월 임대가 끝나던 6월 완전 이적이 없다며 계약 해지를 내세우게 된다.

허나 , 정치적 문제 등으로 국가 문제 수준으로 파문이 커지자 페루지아 구단주는 다시 완전

이적을 시키기로 하는데 (이미 안쓴다 했다 다시 쓴다는 상황에서) 입장에 차이가 생긴 복구의

거부감에 복귀 거부를 하며 소유권 분쟁이 생기게 된다.

 

결국 이후 FIFA를 통해 엄청난 빚을 지게된 안정환은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매니지먼트 대행사와 계약을 할수 밖에 없었고

J리그 시미즈 펄스로 이적 하게 되었고.. 그것이 안정환의 축구인생이 날개를 채 피지 못한채

끌려가고 있음을 의미했을지도 모른다.

 

J리그 활동의 1년 동안에도

이탈리아 시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 일본에서 1년간 활약 (23골 4도움)이 유럽에서먹힐지

, 전성기에 비해 나이가 많아졌던 부분들 때문에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요르카

바야돌리드

독일의 살케

헤르타 베를린등의 클럽들은 간만 보다가 내빼기 바빴다

결국 J리그 내 이적 을 다시 하며 2년간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선수생활을 하다가

전반기 5골 1도움으로 활약끝에

 

프랑스의 르샹피오나의 FC 메츠로 완전 이적하게된다

 

2000년 초

아시아 최고의 테크니션 수준을 갖고 있던 안정환이..

박지성과 달리 , 분쟁등의 노선을 잘못 택함으로 유럽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아있던 점에서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

 

 

 

 

 

<안정환 외모>

대표 별명은 테리우스

 

축구계에서 보기 힘든 조각같은 꽃미남 비주얼로 여성팬들의 인기가 높았다

월드컵으로 엄청나게 도약한 안정환의

리즈시절에는 현빈,김재원,한고은,장동건,원빈등 인기스타들과 CF를 연달아 찍었다

2000년 초반 일본 방송에서도 많은 화재가 있었다

2002년 할일 월드컵 당시 해외 투표 외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본 바둑 만화인 히카루의 바둑에 최종보스인 고영하의 외모 모델이다.

 

안정환이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 한다 (나도 바조 제일 좋아했는데)

그당시 바조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노장이어 한물갔구나 생각 했는데

그의 경기를 보고 왜 세계최고의 선수중 한명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바조와 시합뒤에는 감격으로 눈물까지 흘렀다고 한다.

(허나 롤모델은 루드 굴리트를 뽑았다)

 

어렸을 때에는 굴리트의 활약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친구 집에서

계속 보고 따라했었다고 한다.

후에 세리에A로 진출한 것도 당시 AC밀란에서 맹활약하던 굴리트의 영향을 받아서 였다

뭉쳐야 찬다 2022년 6월 26일 방송분을 통해 드디어 직접 굴리트를 만났다.

 

안정환의 헤어스타일은 앞서 말한 이탈리아 로베르토 바조(말총머리)의 영향을 받은것인지

긴 장발의 헤어스타일로 등장하게 된다. 훗날 고백에선 (귀찮아서 였다고)

 

 

 

<안정환의 총평>

강한 멘탈의 사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저니맨으로 꼽힌다.

 

우수한 외모 뿐만 아니라

축구 실력이 뛰어나서 더 높고 화려한 무대에서 뛸 수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이해 관계와 상황의 악재들이

겹치면서 커리어가 발목을 잡혔던

 

비운의 선수.

 

2002년 국가대표로의 커리어 외에

실력 만큼 날개를 펴지 못했다 라는 인상이다.

 

이적문제가 꼬이면서 계약문제로 엄청난 빚더미에 올랐고

유럽리그를 벗어나 일본리그에서 돈을 벌어 묶여있었다

 

큰 경기에 강했던 안정환은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월드컵 외에 클럽 커리어에서는 완전히 꼬여버렸다.

 

히딩크는 안정환이 자극을 주면 반응하는것이 마음에 들었으며

특급선수의 자질이라 여겼다고 한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인 오쿠보 요시토가 제일 존경하는 선수라고 언급했다

 

 

<스퀄의 개인적인 이야기>

2002년 월드컵 전후때 정말 좋아했던 선수다..

1994년 미국 월드컵때 로베르토 바조를 좋아했었는데..

 

슈퍼스타였던 바조도 결승전 최후의 승부차기 실패후..

호나우도나 지금의 메시나 호날두 같이 최고의 날개를 필수 있었던

선수임에도 참 여러가지로 불운이 겹치고 겹쳤던 선수인데

 

안정환도 참 축구선수로 저평가 된 선수 인것 같다.

참으로 다행인점은 2002년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해서

국민들에게 매우 사랑받고 영웅으로 기억된다는점이다 하지만

 

국대 선수로써의 안정환 뿐만 아니라..

맨유에서 활약 해서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박지성이나 지금의

손흥민 선수 처럼 좀더 역사에 이름을 남길수 있는 선수가

될수 있었는데.. 한참의 나이때 이적 문제랑 이적문제로 인해 생긴

막대한 빚, 그리고 그 빚을 갚느라 비싼돈을 제시했던 J리그에 가야했던것

등등의 여러 악재가 겹쳐 불운했다.

 

다행히 지금은 여러 TV나 방송인으로써도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고

선후배들에게 엄청난 두터운 신임으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내 마음속의 안정환은..

내마음속의 로베르토 바조 처럼 영웅으로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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