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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공간/잘생긴 남자 연예인

[홍콩] 장국영의 모든것 (장국영 고화질 레전드 사진 움짤) 張國榮,Leslie Cheung

by 스퀄(rangx2) 202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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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장국영의 모든것 (장국영 고화질 레전드 사진 움짤) 張國榮,Leslie Cheung

이름 : 장국영

(張國榮,Leslie Cheung)

 

출생

1956년 9월 12일

영국령 홍콩 (구룡반도)

 

사망

2003년 4월 1일 (향년 46세)

사망사유

자살 (홍콩 중서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국적

영국령 홍콩 -> 캐나다

 

본적

광둥성

 

신체

175cm , 70kg , O 형

 

직업

영화배우, 가수, 작곡가, 감독

 

데뷔 1977년 앨범 ( I Like Dreamin)

학력 리즈대학교 섬유학 전공

 

가족 4남 6녀중 막내

 

무교

 

언어

광둥어,영어

 

별명 꺼꺼, 십자

 

취미

요트 , 배드민턴, 음악, 골동품 수집 , 독서

 

대표작품

영웅본색

패왕별희

아비정전

해피 투게더

 

 

<장국영>

홍콩의 배우

가수로데뷔해 영화배우로 더 알려졌다

 

장국영은 영어권에서 레슬리 청으로 이름을 썼는데 영화 바람과함께사라지다 에서

애슐리역의 레슬리 하워드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1980-1990년대로 이어진 홍콩 느와르 영화의 상징 급 인물로

세계적인 홍콩 스타 였다

 

당시 8-90년 아시아권 최고의 위상을 갖었던 홍콩 영화에서 대표되는

자윤발, 성룡, 매염방 , 적룡 , 유덕화 등과 함께 대표 되는 탑스타였다

 

1980년 무적 3인방 (장국영,알란탐,매염방) 중 1명이며 홍콩 사대천왕 이라 불리우는

(장학우,유덕화,곽부성,여명) 보다 먼저 흥행했던 배우

 

그의 출연작은 대부분 엄청난 히트작이었으며 한국에서도 방한할 만큼

80년대 90년대 장국영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영웅본색, 동사서독, 아비정전,종횡사해, 패왕별희, 금지옥엽, 해피투게더, 이도공간등

그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했던 영화에는 장국영이있었다

 

 

< 대한민국 내한 >

1977년 부터 2002년까지 장국영은 6번의 내한을 했다

한국의 예능프로그램,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추었으며

CF도 찍을 만큼 한국인들에게는 친숙한 해외스타중 한명이다.

 

중화권을 대표하는 미남 스타로 알려져있다

실제 나이가 설운도 보다 2살 많다는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현재

살아있다면 66세.

 

1978년 1979년에 한국에 국제 가요제 (MBC주관)에

2년 연속 출연한적이있다

 

1989년 오리온제과에서 나왔던 초콜렛인 "투유"의 광고에 출연해서

한국의 10대20대 소녀들의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도했다.

 

특히 투유 광고를 찍을때 촬영장을 방문한 기자와 관계자들에게 초콜릿을 직접

나너주며 연습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챙겨주고 배려하는 태도에

한국 연예계층들도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오리온에서 초콜렛을 먹고 실제 본인이 겪은 사랑 사연을 보내준 사람들중

추첨을 해서 장국영의 마지막 콘서트 티켓을 주는 마케팅을 추진했고

불티나게 팔렸다

 

투유는 한국 한정 싱글곡이었지만 보통화와 광둥어 2가지 버전으로 발매되기도했다.

KBS 젊음의 행진에 출연해 이선희와 합동공연을 했으며

쟈니윤쇼에도 출연했다

 

 

 

<죽음>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자신이 묵고 있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14층 객실에서

투신해서 4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톱스타였던 장국영의 죽음은 전세계에 엄청난 파장과 충격이 있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그를 따라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당장, 뉴스상에서만 장국영

투신이후 6며의 팬이 함께 투신한 베르테르 효과가 있었다)

 

장국영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지 곧다가올 23년으로 20년이 되었지만

2005년에는 중국 영화 100주념 기념 가장 사랑 받는 남자 배우 1위로 장국영이 선정되기도

했으며 아직도 매년 4월 1일 홍콩에서는 그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리고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이 출연했던 영웅본색 2 에서 경찰역할로 적의 총을 맞아 병원앞에서 죽게되는데

장국영이 사후, 옮겨지게 된 병원이 동일하다

 

 

<친구들의 회고>

 

매염방,진숙분의 회고

장국영이 뜨기전엔 행사를 뛰는것은 주로 밤무대였고 스케줄이 마구잡이라

비행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고소공포증이 평소 있던 장국영은 그 스케줄을 힘들어했다고한다

매염방은 그를 위해 비행기 의자 밑에서 자신이 자고 장국영에게 의자위를 배려하기도 했으며 장국영은

평소 혼자있는것과 어둠을 무서워하는 매염방을 위해 방2개가 뚫린 방을예약 해서 배려해주었다 한다

 

<가수로써의 장국영>

일찍히 77년에 데뷔했지만 그의 소속사가 방송국과 조합이 맞지 않았고 6-7년의 무명기간이있었다

1984년 MONICA 로 첫 가요 시상식 수상을 받고

1987년 썸머 로멘스 , 천녀유혼 삽입곡이 들어가있는 앨범은 엄청난 판매량을 보이기도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에게 가장 친숙히 알려진 메가 히트급 영화인

영웅본색이 OST인 당년정 , 분향미래일자가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하다

 

배우로써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존재 하지 않았던 가녀린 남자의 이미지로

보호본능의 모성을 자극하는 배우였다 그덕분에 아시아에서 장국영의 팬은 압도적이었으며

한국에서도 장국영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5:5 가르마를 유행처럼하고 다니기도했다

 

<생애>

홍콩직물왕의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10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엄청난 명성을 자랑한 아버지였지만 가정을 잘 돌보지 않고 첩도 있었다.

부모와 나이차이도 많고 누나와 형에게 치여 외롭게 자라며 유모를 친 부모 보다 더 많이 의지했다

 

영국의 리즈대학교에서 유학했으나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자 중퇴하고

1976년 연예계 들어섰다.

영어가 유창한편이었고 영국 리즈 대학교의 고학력자 이다.

 

무명의 6-7년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1984년 모니카로 가수로 엄청난 성공을 맞게 되며

이후 여러 영화의 히트송을 부르며 가수로 레전드를 찍게 된다

 

영화배우로는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화인 영웅본색 ,

1987년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한때 천안문 6.4 항쟁에 대해 중국에 비난 하고

삼합회와 마찰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1990년 은퇴를 선언하기도했다.

 

은퇴후 캐나다로 이민해 조용히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캐나다로 간 장국영은 아무도 몰라주는 생활에 지루함을 느꼈다고 한다

가수 은퇴이후 , 아비정전 , 동사서독, 패왕별희, 해피투게더등의 굴직한

영화로 재등장하며 아시아의 탑스타로 활약하게 된다. 이후 1995년에는

다시 가수로도 복귀해 히트곡을 내어놓는다

 

장국영은 대외적인 성격에 낮도 가리고 내성적이었으나

동료나 스태프에겐 매우 친절하고 따뜻하며 매너가 좋으며

연예인들 사이에서 인격자 그자체로 통했다.

 

<연애관, 동성애에 관련해>

 

공식적으로 자신이 성적 지향을 밝힌적이 없다. (매우중요)

인터뷰중 연예인이 양성애에 대한 질문을 바은적이 있으며

 

"만일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사람을 좋아한다며

그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

 

"남여 모두가 OK면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는 2배가 되는데 뭐가 안좋은가?"

라고 한 발언과

 

2000년 TIME지에 본인이 " 양성적인 부분이 있고 그런 표현이 적합할것이다"의 발언

때문에 커밍아웃처럼 알려지게 된다.

 

문제는 그 자신은 확연하게 확정지은적이 없다

장국영은, 외로운 집안에서 정이 많은 청년으로 자랐고 또 평소 사람에 대한 휴머니즘

자체가 풍부한 사람이었다

 

사람에 대해 사랑하는 점을, 여러 매체등이 물고 뜯고 상업적으로 자극적인 이슈를

만들어냈다

 

매염방이 장국영 사후에 인터뷰에서도 "황색언론이 그의 성지향성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했고 , 가쉽거리로 전락된지 오래고 사후에도 논란을 이어나가고 있다"

라고 말하기도했다

 

장국영은 청소년때 끈질기게 구애해서 만난 여자도 있었고

배우로 성공후 함께 출연한 홍콩 여자배우와도 사귄적이 있다

그녀(모순균) 에게 결혼 프로프즈까지 했으나 거절당해 헤어졌다.

 

마지막에 유산을 상속받게 된 사람이 남자이긴했다.

 

문제는 장국영은 , 당학덕(남자)을 연인으로 인정한 적이 없고 부정했으며

동성연애에 관련된 말은 당학덕의 언급이었다.

만약 당학덕 말대로 진짜 둘이 연인이었다면 장국영의 여자친구인 사람들에겐 모두

거짓 연애 밖에 되지 않는다 (연애 증거 자체가 없다)

 

당학덕은 1983년 1월 초 부터 연인 관계가 시작되었다 밝혔으나

장국영은 당시에 꾸준한 연애를 하였고 모순균외에도 프로포즈를 한 여자가 더 있었다

1980년 장국영은 홍콩언론지 명보에서 설이와 스캔을 취재했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후 모델출신 배우인 예시배와도 2년간 사귀었다.

 

2001년 모순균은 토크쇼에서

"만일 내가 장국영의 프로포즈를 허락했다면 지금 내삶은 어떻게 변했을지 므겠다 " 라고

말했다 모순균은 2번의 이혼 3번의 결혼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유서 와 의문점>

感情所困 無心戀愛世

(감정에 곤혹을 느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남아있지 않다)

 

2003년 4월1일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 객실에서 투신 하여, 향년 46세

장국영 떠나다.

 

이날 한국에서는 만우절이여서 거짓말로 여기고 그의 사망 소식을 믿지 않다

뒤늦게 충격을 받은 팬들이 많다.

 

당시 전염병 사스 (지금의 코로나 같은) 유행병으로 위험했으나

4월 5일 열린 추도식에는 전세계 많은 팬들이 장국영을 찾아 명복을 빌었다

 

주윤발은 마스크를 쓰지도 않고 오기도 했으며

발인식 추도사는 서극감독, 작곡가 황페이,장학우가 맡고

평소 울지 않던 양가휘와 양조위가 엄청 울다가 혼절하기도 했다

 

장국영의 시신은 홍콩 케이프 콜린스 화장장에서 화장된뒤

위패는 보선사에 안치되고 유골은 당학덕에게 인계 되었다.

 

장국영의 죽음들 둘러싸고 삼합회에서 살해했다는 음모론

천안문 발언으로 중국정부가 살해했다

당학덕이 유산을 노리고 살해했다 등의

유언비어가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렸다.

이러한 유언비어로 의심이 나온 점에는

 

  1. 경찰이 말한 장국영의 유서는 전문이 공개 되지 않았다
  2. 장국영의 고소공포증이 극심했으나 투신으로 자살했다 하여 팬들은 믿지 않았다
  3. 여러 TV에서도 다루었지만 장국영이 있었던 24층은 호텔 중간이 돌출된 구조라 건물에서
  4. 멀리떨어진 아스팔트위로 떨어지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5. 투신치고 혈은이 적었다고 한다 (다만 전문가들의 의견으론 투신한다고 꼭 혈은이 많지는 않을수있다고한다)
  6. 사건당일 유산상속인인 당학덕의 행적에도 의문이 있었으며 장국영 사망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장국영이 죽기전 당학덕과 심하게 싸우는걸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나기도했다

 

이러한 의심들이 누군가 장국영을 살해한뒤 현장에 시신을 유기했다 라는 견해도있었다

다만 평소 장국영은 우울증이 심했고

 

특히 사망당일 점심을 함께했던 디자이너에게 " 죽고 싶을때는 수면제 보다 뛰어내리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운전을 하다가 어딘가 확 부딪혔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한다.

 

2020년 10월29일 당신이혹하는사이 방송에서도 장국영의 자살 관련 음모론을 다루기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의문점인 건물 중간에 튀어나온 돌출 부로 1층까지 떨어지기 불가능하다 라는 점들을 모두

검증 해가며 결과적으로 자살이 맞다 라는 결론을 지었다

 

<장국영의 취향>

해산물을 좋아했으며 대하를 특히 좋아했고

멕시코 음식을 끔찍히 싫어했다고 한다

 

마작을 좋아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는 양조위이며

양조위또한 2008년 장국영이 떠난 사후 칸 영화제에서 장국영과 가장 잘맞았던

상대배우로 화답했다.

 

친한 연예인으로는 나문,임청하,매염방,종초홍,유가령,장만옥,원영의,양가휘,주윤발,성룡

유덕화,주보의 등이 있다.

 

나이가 든뒤에는 각종인터뷰에서 결혼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독신으로 생활이 익숙해져서 이생활이 좋다고하였다

 

 

 

<장국영 레전드 사진들>

 

 

 

<장국영 한국 내한 사진들>

 

 

<장국영 움짤>

 

 

<장국영 유서와 죽음>

 

<장국영 사후>

 

 

<3D로 재현한 장국영>

 

 

<장국영 노래>

 

분향미래일자

 

 

당녕정

 

 

<장국영 사후 영상>

 

 

 

<스퀄의 개인적인 장국영에 대한 이야기>

 

76년생인 누나도 장국영의 엄청난 팬이었고..

당시.. 8-90년대에 초,중,고,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은

 

한참 하드보드지 (종이)로 만들던 수제 필통에

여러 연예인 사진을 잡지에서 잘라 , 코팅지로 입히곤했는데

소피마르소, 장국영 같은 배우들이 이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의 인상이 정말 깊었다

참 잘생긴 사람이라 생각 했고 또 우수에 젖은 눈망울이 당장이라도 울것같은

모성의 느낌도 충분했다.

 

참 안타까운것이 대스타이다 보니 따라다니는 그에 대한 꼬리표와 이슈거리를 찾기 위한

기자들의 지나친 간섭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파파라치를 피하다 사망하게 된 다이애나비가 생각 난다 해야할까)

 

그가 양성애자라서 욕을 먹어야 할 이유도 없고 동성애자라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이유도

없다 특히 스스로 커밍아웃을 발표한적도 없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주장을 펼친적도 없다

 

하지만, 보수적이던 20년전 이슈는 그를 물고 늘어졌고

여러가지 삶에 대한 외로움과 회의감이 그의 생을 마지막으로 몰고간것은 아닐까 생각 한다.

 

배우로써도 참 매력적이었지만 아직도 분향미래일자나 당녕정을 들으면

90년대 그시절의 추억과.. 또. 떠나간 장국영이 그리워 눈가가 촉촉해진다.

 

이제는 다시 볼수 없이 마음속에 남았지만 아직도

전세계에 많은 팬들이 영원히 장국영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니

 

내세가 만약있다면.

떠나간 뒤 그곳에는 장국영이 더이상 고통받지도 외롭지도 괴롭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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