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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공간/잘생긴 남자 연예인

[프랑스] 알랭 드롱 (Alain Delon) 1980년대 최고의 미남 세계 4대 미남 알랭 드롱 이야기

by 스퀄(rangx2) 202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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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알랭 드롱 (Alain Delon) 1980년대 최고의 미남 세계 4대 미남 알랭 드롱 이야기

 

 

본명

알랭 파비앙 모리스 마르셀 들롱

Alain Fabien Maurice Marcel Delon

 

출생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오드센

 

국적

프랑스

 

신체

177cm, 75kg

 

직업

배우

 

활동

1957년 - 2017년

 

배우자

나탈리 들롱 (1964 결혼 – 1969 이혼)

 

자녀

안소니 들롱 (1964년생)

아누슈카 들롱 (1990년생)

알랭 파비앙 들롱 (1994년생)

 

<데뷔까지>

프랑스 배우

장폴 벨몽도, 카트린 드뇌브, 잔르 모로 등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장본인

프랑스 밖에서 또한 인지도가 상당했으며 이탈리아 영화사에도
중요한 배우로 기록되었다

한국,일본에서도 그의 작품은 인기를 끌었고

세계 4대 미남이라 불리울정도의 명성을 갖고 있다.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오드센 주 소에서 태어나
4살때 부모가 이혼, 재혼한 어머니와 살았으나 계부와 갈등을
빚었고 여러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17세 프랑스 해군으로 입대
했고 통신학교 기간병 근무중 절도죄로 불명예 전역

제 1차 인도 차이나 전쟁때 1년간 파병되기도했다.
그후 각지를 떠돌다 1956년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에서
웨이터,짐꾼,비서,점원등의 잡일을 하다가 여배우 브리짓 오버와 친분이
쌓이며 칸 영화제를 방문했다가

미국의 영화 제작자인 데이빗 셀즈닉에게 발탁 되었다.

 

<알랭드롱 이야기>

비상식적으로 잘생기면 살면서 겪는 일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중 한명인 알랭드롱

 

세계 4대 미남 하면 흔히 떠오르는

 

"비요른 안데르센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알랭드롱"

"애드워드 펄롱" 등이 거론되는데

 

그중에서도 역대급이라는 영화배우다.

 

1935년대생이고 세월이 흘러 2021년인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

아직도 그 시대를 함께 산 사람은

 

알랭드롱을 잊을수가 없다.

 

 

정말 엄청 엄청 나게 잘생겼을때 일어날수 있는일이 무엇이 있을까?

알랭 드롱의 일화는 드라마와 같다.

 

 

알랭드롱은 당시 최고의 여배우로 인기를 누렸던 로미 슈나이더와

크리스틴이라는 영화에서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한 둘은 바로 연인이 되었고

60년대 가장 핫한 전세계 미인 미남 배우의 결혼으로 관심사가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안젤리나 졸리와 브레드피트의 결혼 정도일까?)

 

로미 슈나이더는 헐리웃의 진출 기회를 버리면서까지 사랑한 남자가 알랭드롱 이었다

 

(문제는 알랭드롱은 5년 정도 열애후 이 여자를 떠난다)

(바람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그뒤로도

 

둘은 헤어진 이후로도 간간히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고

 

루미 슈나이더는 다른 감독과 결혼 한뒤 아이까지 낳고 평탄하게 삶을 살아가는듯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을 오래지속하지 못하고 이혼한 슈나이더는

 

이번엔 자신의 매니저와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지만

 

전 남편(감독)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대다가 설상가상으로 아들까지 사고로 죽게 된다.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든 루미 슈나이더는

 

 

매니저 남편과도 이혼하고 어느 호텔에서 시신으로 발견 된다

사인은 심장마비 44세.

 

죽기전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에서 그녀는

 

"알랭드롱.. 그를 잊지 못해서 내 삶은 추락 했다" 고 말하기도했다

실제 장례식 송사는 알랭드롱이 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언급한 남자가 첫번째 감독이었던 남편도, 두번째 매니저였던 남편도 아닌

 

젊었을때 사귀었던 알랭드롱이란 사실이 참 아이러니 하다

 

 

알랭드롱은 형제가 3명 있었는데 모두 이복 형제였고..

어머니는 계부와 사이에 낳은 자식만 이뻐하고 방황했던 알랭드롱은

 

어릴때 부터 사고를 여기저기서 많이 쳤다.

14살때 학교를 그만두고 계부를 따라 도축장에서 일하다가

 

전쟁중 군대에 자원했고 , 이런 유년 과정을 거치며

여자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한다

 

 

군대에 3년간 있으면서 11개월간 구치소에 가기도 하고 결국 여러 사건 사고로

(지프를 훔쳐 근무지 이탈한 사건 , 근무중 절도죄 등등)

불명예 제대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짐꾼, 바텐더 , 푸줏간 인부, 웨이터등의 알바를 전전하다가

여배우 브리짓 오버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있었고 이후 오버와 함께 칸 영화제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미국 영화 제작자 데이빗 셀즈닉 에게 발탁 되어 배우가 되었다

 

문제는 이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천박한 미남이라 칭했고

한 작가는 알랭드롱을 "시궁창에서 피어난 장미"라고 했다고 하기도 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알랭드롱은 여자를 끊임 없이 만나기 시작했다 -_-;

 

 

알랭드롱의 수많은 여자들 중

 

미레이유 다르크 라는 여배우는 알랭드롱과 동거를 했었는데

당시 알랭드롱이 살인 사건 용의자로 수배가 되며 경찰의 감싷에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한다

 

미레이유 다르크는 용의자로 지목된 알랭드롱을 감싸고 지키고 있었고

 

심지어 나중에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알랭드롱에게 차인 뒤에도

 

"우리는 영원할거라 생각 했다 , 아무문제 없이 잘 살던중 그가 일방적으로 헤어졌다 하지만

지금 우린 친구고 그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란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

 

이 여자가 미레이유 다르크

 

 

이 여자가 미레이유 다르크

 

그외에도 한국에서도 잘알라졌던

 

6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 도

 

알랭드롱이랑 사귀고

 

 

 

알랭드롱이 찼고

또 쿨하게 친구로 지내고 -_-;;;;

 

 

그와 결혼한뒤 4년 같이 살았던 나탈리 드롱은

 

 

"내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알랭드롱과 오래 살수 있었던것은

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오는 그를 간섭하지 않아서였다 " 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여러 일화를 보다시피 언론에서는 알랭드롱을 나쁜남자 , 쓰레기로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정작 만난 여자들은 알랭드롱을 나쁘게 말한 여자가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

 

"집착 하거나"

" 아직 좋은 사이다 " 라고 하거나

"앞으로도 좋은 사이었으면 좋겠다" 라거나

"알랭드롱이 하는 일이 모두 잘 풀렸으면 좋겠다" 라고 하거나

"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빈다 " 식이었다.

 

사실 알랭드롱은 사진 빨이 안받는 배우로 유명하다 실물이 영상 , 사진 보다

100 배 잘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영화관계자는

 

"알랭 드롱이 파티장에 들어오면 다들 숨을 죽이고 그를 쳐다 봤다 "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지기 일수였다 라고 한다.

 

<알랭드롱 레전드 고화질 사진들>

 

<알랭드롱 움짤>

 

< 알랭드롱의 자손들>

 

 

 

 

 

<스퀄의 알랭드롱의 모든것>

 

-참고 : 알랭드롱 해외포럼 , 나무위키 등

 

알랭드롱은 60년대 프랑스,이탈리아 영화의 주인공이다.

미국 진출을 실패 했는데 그 이유는 아래,

 

4살때 부모가 이혼했고 재혼한 새엄마는 아버지와 사이의 자식들만 이뻐해서

어릴때 부터 소외감을 받았다

 

그래서 사고를 많이 쳤고 여러 학교에서 퇴학을 당해왔다

(어디서 제임스딘과 닮은..구석이)

 

오죽하면 군대에 미성년의 나이로 자원입대한다했을때 새엄마가 허락했다

할 정도니 (부모의 허락 없이 자원 불가) , 새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건 분명하다

 

그런 성격 탓에 여자에 대한 불신이 컸다고 한다.

 

통신학교 시절, 절도죄로 불명예 전역하고 이후, 1차 인도차이나 전쟁당시 1953년-54년에

베트남 사이공 해군기지 무전병으로 1년간 파병을 갔다

이때도 지프를 훔쳐 무단이탈하다가 차를 강물에 빠트린 혐의로 11개월간 수감후

 

불명예 전역했다.

 

불명예제대후에 세계를 떠돌다가 2년뒤인 56년에 프랑스로 돌아와서

 

웨이터등의 허드렛일을 다해야했다

(집이 못살았다고 한다.)

 

아무튼 젊은 시절엔 배가 고파 레스토랑 근처에 우두커니 있으면

 

종업원이 공짜밥을먹여주기도 하고 옷을 주기도했다는 일화가 있었고

 

너무나도 그를 만지려는 사람들이 많아 그에게

어머니가 어릴때 부터 "만지지 마세요"라는 펫말을 붙이고 다닌적이 있다고 한다

(마돈나의 2012년 노래인 'Beautiful Killer'의 마지막 가사가 "하지만 넌 절대 알랭 들롱이 될 수 없지(But you'll never be Alain Delon)"이다. 들롱의 모든 영화를 봤으며 알랭 들롱의 굉장한 카리스마를 리스펙트해 넣은 가사라고.)

 

그러다 그곳에서 여배우 브리짓오버와 친분이 쌓이고 칸영화제를 방문했다가

미국 영화제작자에게 발탁되서 배우가 되었는데

 

문제는 이 감독이 , 알랭드롱에게 영어 교육을 제공하고 영어를 배울것을 제안했지만

다른 감독(Y.알레그)의 고국에서 경력을 더쌓고 가라 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셀즈닉과 계약 파기후 Y.알레그의 감독이 만든 영화

 

<여자가 다가올때>로 데뷔했다 이후 <사랑은 오직한길>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

등 여러 로맨스 영화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다가 공전의 히트작인

 

<태양은 가득히>로 세계적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알랭드롱이 갖고 있는 서늘하면서 퇴폐적인 특유의 매력탓에 주로 느와르에 출연했고.

그덕에 "프렌치 느와르"의 전성시대를 연 장본인이기도 했다.

 

어렸을때 질풍노도 시기때의.. 성격이나 행동 탓인지 알랭드롱은 영화에서도

주로 하류인생을 연기했고.. 경험 탓인지 너무나 잘어울렸다.

 

알랭드롱은 스캔들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위에 앞서 말한 로미슈나이더 와 관계

 

1958년 들롱은 사랑오직 한길에서 호흡을 맞췄던 로미 슈나이더와 사라에 빠직

약혼했고 5년간 연애하다가

 

1963년 결별했다. (알랭드롱 스스로의 말로는 이것이 그의 진정한 첫사랑이었다고한다)

 

이후에도 로미가 죽을대까지도 가까운 친구로 지냈고 단순히 이성 친구이상의 애매모호(?)한

사랑을 보여줫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객원맴버인 니코 와 1962년 외도했고.

 

얼마 만나지 못해 헤어진 그는 유일한 결혼생활인

1964년 부터 69년 까지 5년 간 살림을 함께했던 부인 나탈리 들롱사이에

 

공식 자식인 아들 안소니 들롱이 있다.

딸인, 앨리슨 르 보르게스는 안소니 들롱의 사생아라고 한다.

 

 

5년 뒤 알랭드롱이 가장 사랑했다 말한 여자인

"미레유 다르크"와 연애를 한다

알랭드롱의 생에 가장 사랑한 여자라는 그녀는

15년간 관계를 지속한 끝에 결별하는데..

 

가장 컸던 사유는 아이를 갖지 못했던것이라 한다

역시나 또한 미레유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2017년 그녀가 사망하자

 

알랭들롱은 굉장히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그외에도 데뷔전인 1950년 가수 달리다와도 사귀었고

브리지 바르도와 염문설

1987년에 21살 네덜란드 모델 로잘리 반 브레멘과 15년간 동거를 하기도했고..

 

이렇게 나쁜남자로 유명하고

 

실제로 나쁜남자기도했다

 

배우

1960년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톰 역

1960년 <로코와 그의 형제들(Rocco i suoi frateli)> 로코 파론디 역

1962년 <프랑스식 십계(Le Diable Et Les Dix Commandements)> 피에르 역

1962년 <태양은 외로워(L' Eclisse)> 피에로 역

1963년 <지하실의 멜로디(Melodie en sous-sol)> 프랑수아 역

1963년 <레오파드(Il Gattopardo)> 탄크레디 역

1966년 <로스트 코맨드(Lost Command)> 필리페 에스클라비에 역

1966년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Paris brûle-t-il?)> 자크 샤반 들마 역

1967년 <사무라이(Le Samouraï)> 코스텔로 역

1968년 <죽음의 영혼(Tre Passi Nel Delirio)> 윌리엄 윌슨 역

1968년 <모터싸이클을 탄 소녀(La Motocyclette)> 다니엘 역

1968년 <악마같은 당신들(Diaboliquement Votre)> 조르쥬 캉포 역

1968년 <친구여 안녕(Adieu L'Ami)> 디노 바랑 중위 역

1969년 <시실리안(Le Clan des Siciliens)>

1969년 <수영장(La Piscine)> 쟝-폴 역

1970년 <암흑가의 세 사람(Le Cercle Rouge)> 코리 역

1970년 <볼사리노(Borsalino)> 로쉬 역

1971년 <레드 선(Soleil rouge)> 가우체 역

1972년 <트로츠키 암살(The Assassination of Trotsky)>

1972년 <형사(Un Flic)> 에두아르 콜망 역

1973년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 지노 역

1973년 <스콜피오(Scorpio)> 스콜피오 역

1975년 <르 지탕(Le Gitan)>

1976년 <고독한 추적(Monsieur Klein)> 클라인 역

1977년 <르 갱(Le Gang)>

1977년 <필립의 야망(Mort d`un pourri)> 자브 역

1980년 <세 번째 희생자(Trois hommes à abattre)> 미셀 역

1981년 <형사 이야기(Pour la peau d'un flic)> 코카스 역

1985년 <형사의 명예(Parole de flic)> 다니엘 역

1988년 <분노는 오렌지같이 파랗다(Ne réveillez pas un flic qui dort)> 그렝델 반장 역

1990년 <댄싱 머신(Dancing Machine)> 볼프 역

1990년 <누벨 바그(Nouvelle Vague)> 루이 역

1992년 <카사노바(Le Retour de Casanova> 카사노바 역

1998년 <하프 챈스(Une chance sur deux)> 줄리앙 역

2008년 줄리어스 시져 역

 

감독

1981년 <형사 이야기(Pour la peau d'un flic)>

 

각본

1980년 <세 번째 희생자(Trois hommes à abattre)>

1981년 <형사 이야기(Pour la peau d'un flic)>

1985년 <형사의 명예(Parole de flic)>

1988년 <분노는 오렌지같이 파랗다(Ne réveillez pas un flic qui dort)>

1990년 <댄싱 머신(Dancing Machine)>

[네이버 지식백과] 알랭 들롱 [Alain Delon]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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